[이슈추적]극심한 생활고에 자살·범죄 등 극단 선택 늘어]

지난해 10월21일 출소한 이모씨(62)는 '별' 27개를 달았다. 막상 교도소 밖으로 나오자 일자리를 찾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씨는 당장 생계가 막막해지자 범죄를 결심했다. 교도소 밖을 나온 지 열흘도 안 돼 영등포구 문래동2가 A금속에서 황동 7kg을 훔쳤다. 시가 27만원 상당이었다. 이씨는 '27만원' 때문에 다시 교도소로 돌아갔다.

지난 4월에는 대전에서 금은방에 들어가 주인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귀금속을 훔친 70대 할머니가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에 따르면 할머니는 대전 동구의 한 금은방에 들어가 주인이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는 틈을 타 진열장에 있던 500만원 상당의 목걸이 3점을 훔쳤다.

경찰 조사 결과 할머니는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금은방을 둘러보며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함께 사는 가족은 없었다.

60대 이상 노인의 생계형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치안전망 2011'에 따르면 만 61세 이상 절도범죄자는 2001년 10만명 당 19명에서 2010년 87명으로 4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연령에서 절도범죄자는 2배 증가했다. 이에 비하면 노인 절도가 심각한 수준으로 지적된다.

12일 통계청 사회조사연구에 따르면 노인이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적인 문제'로 드러났다. '경제적 문제'를 호소한 노인 비중은 해마다 증가추세다. 2007년 38.4%에서 2009년 41.4%로 늘었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 빈곤감이 높아진다고 해석할 수 있다.

노인범죄 증가는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개인의 노후 대책 부족과 사회 안전망이 뒷받침되지 못한 점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통계청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공적연금 수급자는 180만179명으로 65세 이상 전체(추계인구) 대비 31.8%로 집계됐다.

이를 뒤집으면 여전히 국내 65세 이상 고령자의 70%가량은 노후준비의 기본인 공적연금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정부가 2008년부터 시행중인 기초노령연금은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재산과 소득이 적은 70%를 대상으로 지급된다. 그러나 단독수급자를 기준으로 월 9만4600원으로 나타나 노인의 궁핍한 삶을 개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지난달 25일 인천 숭의동의 한 주택에서 여모씨(69)와 아내 김모씨(68)가 목숨을 끊었다. 여씨 부부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려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의 수입은 부부가 합쳐 받는 노령연금 월 15만원이 전부였다.

한국인 평균수명은 이미 80세를 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80년 65.9세에서 1990년 71.4세, 2000년 76.0세에 이어 2년 전인 2010년 80.7세(남 77.2세·여 84.1세)를 기록했다. '60청춘'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시대다.

노후대책 준비가 부실하면 환갑 이후에도 일터로 내몰리는 노인도 상당수다. 지난 3일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고령자 고용률은 지난해 28.9%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아이슬란드(32.7%)에 이은 2번째다. 이미 '노인대국'으로 지목된 일본의 19.3%보다 9.6%포인트(p) 높은 수준이다.

고용의 질도 문제다. 60세 이상 고령 취업자의 40.7%는 '나홀로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폐지나 폐품수집 등 노동에 종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생계형 범죄는 사회 불만 요소가 결합해 강력·성범죄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노인들의 '묻지마 방화'도 최근 6년 사이 곱절 가까이 증가했다.

대검찰청 '범죄분석 2011'에 따르면 만 61세 이상 노인이 저지른 방화는 2005년 38건에서 지난해 63건으로 늘었다. 노인 범죄를 일컫는 '흰머리 범죄'는 성범죄와도 무관치 않다.

지난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태원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 60세 이상 노인이 저지른 성폭행 사건은 4159건으로 집계됐다.

경찰 관계자는 "종로 탑골공원에 가면 할아버지를 상대로 성매매하는 할머니가 꽤 있다"며 "점심 식사비용을 댈 수 있는 할아버지가 밥을 사주고 할머니와 성관계를 맺으려다가 할머니를 구타한 뒤 경찰에 신고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노후대책보다 '생존'에만 몰두했던 전후세대가 수명이 늘어났지만 사회가 뒷받침해주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노인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연금제를 확대하고 양질의 일거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곽대경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제적 원인으로 발생하는 생계형 범죄를 막으려면 연금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국민연금제도 및 공적연금제도를 확대하고 노인 일자리를 창출하는 동시에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준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점점 '젊어지는 노인'들이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하면서 가족과 사회에 대한 불만이 터져 강력범죄를 저지르게 된다"며 "은퇴 후에도 계속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노인교실이나 노인복지회관을 비롯해 대학 평생교육제도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진영 기자 트위터 계정@zewa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