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채소는 그렇게 푸르지 않다
가와나 히데오 지음|전선영 옮김|판미동|208쪽|1만2000원
"썩는 채소와 썩지 않는 채소 중 어느 것이 더 좋은 건가?" 이런 질문을 받으면 "썩는 것!"이란 대답이 먼저 튀어나온다. 몇 주가 지나도 썩지 않는 패스트푸드, 며칠이 지나도 멀쩡한 채소는 '방부제' '유해한 화학 성분'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이 책은 "안 썩는 게 '진짜 채소'"라고 주장한다. 실험도 보여준다. 화학비료로 키운 '일반 채소', 유기비료를 쓴 '유기농 채소' 그리고 비료·농약 없이 키운 '자연 재배 채소'를 각각 물이 담긴 병에 넣어 상온에서 놔두면 일반 채소는 물론 유기농 채소도 썩지만 자연 재배 채소는 '시든다'고 한다. 완벽하게 자연 재배한 쌀은 이 과정에서 감주→식초→물로 변하지만 유기농 쌀, 일반 쌀은 썩는다.

↑ [조선일보]
30년간 자연 재배를 설파해온 일본인 저자의 주장은 매우 전복적이다. 자연 재배의 핵심은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것. 저자는 비료의 성분 때문에 벌레가 달려들고, 그 벌레를 없애기 위해 살충제를 치는 악순환을 끊으면 충분히 '진짜 채소'를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책 제목은 인간의 눈을 현혹시키는 채소의 색깔에 관한 이야기. 소를 풀어놓으면 초록색 짙은 풀은 놔두고 옅은 색 풀을 뜯어 먹는다고 한다. 유심히 살펴보면 색깔 짙은 풀 옆에는 소똥이 있다. 소똥의 질소 성분을 흡수한 풀은 빨리 자라고 색깔도 선명해 인간의 눈에는 더 싱싱해 보이지만, 소는 본능적으로 옅은 색 풀이 자신의 몸에 더 좋다는 걸 알고 있는 셈이다. 그럼 흙은? 저자는 우선 흙에 남은 '비료의 독(肥毒)'을 빼내야 한다고 말한다. 땅을 파보면 화학비료는 흙에 섞이지 않고 뚜렷한 층을 이루는 경우가 많은데 이 층은 온도도 차갑고 딱딱해 '죽은 흙'이라는 것. 이를 갈아엎고 밀·보리 등을 심어 몇 해를 지나면 뿌리가 흙을 파고들며 잘게 부수고, 미생물이 활동을 하면서 흙이 부드럽고 따뜻해진다고 한다. 이런 상태가 되면 비료를 뿌리지 않아도 저절로 자연의 선순환이 시작된다.
요컨대 20세기 녹색혁명은 인류를 기아로부터 해방시켰지만 '더 달게, 더 크게, 더 많이' 수확하려는 인간의 욕망에 따라 식물이 충분히 건강하게 성장할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 게 문제라는 것. 재배자가 아닌 소비자 입장에선 시종 '어, 정말?' 하는 의문이 들고 지금까지의 상식을 배반하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워낙 생생한 실험과 실례를 들고 있기 때문에 점점 설득되는 느낌이 든다.